AGM-183A ARRW. 사진 제공 · 록히드 마틴 5월 5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박스데일 공군기지에서 B-52H 전략폭격기 1대가 이륙했다. 이 폭격기가 향한 곳은 ‘노던 에지(Northern Edge) 21’ 훈련이 진행되던 알래스카다. B-52H 폭격기는 알래스카 인근 공역에서 데이터링크로 표적 정보를 수신해 극초음속 미사일을 가상 발사했다. 1100㎞ 이상 떨어진 곳의 표적은 수분 만에 파괴된 것으로 판정됐다. 임무를 마친 폭격기는 유유히 박스데일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이번 훈련은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OM)가 지원하고 미 공군 제49시험평가비행대가 실시한 ‘전영역작전능력실험’(All-Domain Operations Capability Experiment·ADOC-E)의 일환이다. 모든 능력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미 공군의 차세대 극초음속 미사일 운용 절차 시나리오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B-52H가 가상 발사한 미사일은 바로 AGM-183A.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끝내주게 굉장한 미사일(super duper missile)”이라고 극찬한 무기다. 미 공군은 ‘공중발사신속대응무기’(Air-launched Rapid Response Weapon), 줄여서 ‘ARRW’라고 부른다. 미 공군이 야심 차게 개발하는 폭격기 탑재용 극초음속 무기다.
지구권 즉시 타격 프로젝트미국 공군은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사진)에 AGM-183A ARRW를 탑재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 · 미 공군 AGM-183A는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된 ‘지구권 즉시 타격’(Prompt Global Strike·PGS) 프로젝트 일환으로 개발됐다. PGS는 미군 수뇌부가 결심만 하면 지구 어디든 1시간 내 재래식 무기로 타격할 수 있게끔 하는 프로젝트다. 당초 미국은 PGS용 미사일로 현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III를 고려했다. 미니트맨 III의 핵탄두를 제거한 후 정밀유도장치가 탑재된 1t 무게의 재래식 탄두를 달아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이 구상엔 문제가 있었다.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ICBM을 발사할 경우 핵미사일 발사로 오해받을 여지가 커서다.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해 치명적 안보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항공기 탑재 공대지 버전, 수상함·잠수함 탑재 함대지 버전 미사일 개발을 추진했다. ICBM이 아닌 별도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해 2011년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2011년 11월 실험에 성공한 AHW(Advanced Hypersonic Weapon)는 마하(음속) 6 속도로 비행해 3700㎞ 밖 표적을 30분 만에 타격했다. 개발 성공에 고무된 미국은 미사일을 아시아와 유럽 등 동맹국 기지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기술을 적용해 공중과 해상에서 발사하는 고속 타격 무기도 추가로 개발하려 했다. 다만 이런 고성능 미사일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위반이라는 러시아 측 항의를 받고 프로젝트를 폐기한 바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실전 배치를 구실로 INF를 탈퇴했다. 그 직후 AGM-183A 개발이 본격화됐다. 같은 시기 러시아는 MIG-31 전투기가 운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Kh-47M2 ‘킨잘(Kinzhal)’을 거의 완성한 상태였다. 중국 역시 비슷한 스펙의 극초음속 활공체를 갖춘 둥펑(DF)-17 미사일 개발을 마무리하던 상황. 미국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의 시작은 경쟁국에 비해 상당히 늦었던 셈이다.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다. 극초음속 무기에 대한 연구 자체는 진행한 상태였다. 유관 분야 데이터를 상당수 축적했기에 일사천리로 개발이 진행됐다. 2018년 8월 미 공군은 록히드마틴과 4억8000만 달러(약 5396억6400만 원)에 ARRW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미사일 시제품은 계약 후 8개월 만에 출고돼 2019년 6월 시험 비행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러시아가 기가 막힌 극초음속 무기를 가졌다고 자랑한다. 음속의 5배 정도 속도라는데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빠른 무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2018년 연례 국정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킨잘 미사일에 대해 “현존하는 모든 방공·요격미사일 시스템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겨냥해 미국의 우위를 드러낸 것이다.
러시아 ‘킨잘’ 미사일 2배 속도미국은 AGM-183A ARRW에 W80 계열 열핵탄두(사진)를 장착해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위키피디아 도대체 ARRW라는 물건이 얼마나 ‘기막힌’ 무기인 것일까. 미국이 제원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적은 없다. 다만 미 국방부, 공군의 보도자료 등을 종합하면 푸틴 대통령이 그토록 극찬한 킨잘 미사일을 압도하는 스펙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사거리가 길다. 자그마치 1600㎞ 이상으로, 미국 JASSM-ER(900㎞)나 독일제 타우러스(500㎞) 등 다른 공대지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괌에서 발진한 B-52H의 경우 오키나와 남방 필리핀해 상공에서, 미국 본토에서 발진한 B-52H는 일본 홋카이도 외곽 오호츠크해 상공에서 발사해도 평양 타격이 가능하다.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미사일은 공중에서 발사돼 대기권 밖으로 솟구친 뒤 다시 하강하면서 마하 20 속도로 표적을 강타한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킨잘의 속도가 마하 10 정도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가공할 속도다. ARRW는 엄청난 속도를 유지한 채 활공하며 돌입 코스를 수정한다. 속도가 너무 빨라 타깃이 된 적은 미사일 피습에 대응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초고속으로 활공하는 데다 변칙적인 돌입 코스를 취하는 특성 때문에 현존하는 그 어떤 요격 무기로도 대응할 수 없다.
파괴력은 어떨까. ARRW 탄두 중량은 500㎏ 안팎으로 추정된다. 관통탄두를 장착한다면 가공할 위력의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가 될 잠재 능력도 충분하다. 미 당국은 ARRW를 “북한을 상대로 한 최신 핵무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ARRW에 핵무기를 탑재한다면 기존 공대지순항미사일 AGM-86에 적용한 W80 계열 열핵탄두가 유력하다. W80의 위력은 150kt으로 평양 중심부를 ‘평탄화’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미 공군은 5월 5일 실시한 전영역작전능력실험 결과에 대해 “킬 체인 루프(Kill Chain Loop)를 완료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링크를 실제로 연습해 극초음속 미사일을 모의 발사했다. (미사일 모의 발사가) 효과적이라는 피드백을 도출했다”고 평가했다. ARRW 미사일을 적 탄도미사일에 대한 선제 타격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킬 체인 루프란 적 미사일을 탐지해 타격하고 그 결과를 평가·판정하는 순환체계다. ‘탐지-식별-추적-조준-교전-평가’로 이어지는 시퀀스다. 각각 △정찰위성과 정찰기 등 다양한 감시정보자산으로 표적 식별 △복수의 감시정보체계를 이용해 목표물 유형과 위협 수준, 대응 소요 시간 등을 판단 △감시정보자산을 집중해 목표물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타격 우선순위 배정 △해당 표적을 타격할지 결정하고 타격 수단을 설정 △실제 해당 표적을 공격 △타격 결과를 확인하고 재공격 여부를 보고하는 것이다. 재공격 여부가 결정되면 다시 최초 탐지 단계로 돌아가 적을 완전히 격멸한다.
킬 체인 강화할 ‘게임 체인저’이번 훈련에서 B-52H 폭격기는 6가지 단계 중 5번째 교전 단계에 참여했다. 표적 정보를 수신해 성공적으로 ARRW 미사일을 가상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ARRW라는 무기체계를 미 공군의 킬 체인 자산으로 편입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미 공군은 이 미사일을 B-52H 전략폭격기와 B-1B 폭격기에 각각 4발씩 탑재해 운용할 예정이다. F-15EX 전투기에도 탑재를 검토하고 있다. ARRW 미사일이 1600㎞를 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5분 남짓이다. 미사일을 탑재한 모기(母機)가 한국 수도권 상공에 있다면 평양 한복판을 때릴 때 2분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다.
미국은 ARRW 미사일을 기존 비(非)스텔스 전술기는 물론, 현재 완성을 앞둔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에도 탑재할 전망이다. 극초음속 미사일만으로도 적에게 공포를 안길 것이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에 탑재된다면 이 무기는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다. 미국이 자랑하는 게임 체인저의 작전 배치가 눈앞에 다가왔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89호에 실렸습니다〉